내 자신 사용 설명서

2022. 6. 5. 08:13하루하루




@jungjiwoowriter

내가 좋아하는 정지우 작가.
깊은 통찰력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글솜씨를 가지셨다.
나를 글 쓰게 만드는 분.

--------------------------

지금껏 난 인생에 두어번 정도 당황스러운 방어기제의 발동 그리고 떨치지 못하는 불필요하고도 불편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몇번 경험해봤다.

평소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
비이성적이고 무엇이 두려운지 겁먹은 모습 그리고 원초적인 감정들의 회오리에 사로잡혀 갈피를 못잡는 모습. 그 시발점엔 '누군가'가 있었고 그들은 나를 그런 상태로 몰고 간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지독히도 미워하고 신경이 쓰이고 또 쓰였다.

대체 내가 왜 그러는 걸까.
도무지 내가 왜 그러는지 알 길이 없고 답답했다.
나를 혼동의 바다로 빠뜨린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내 근본적인 가치관과 충돌했고, 나는 이해하려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그 노력은 내 자신을 흔들어버렸다.
결국엔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혼동스러웠고, 그랬기에 화조차 낼 수 없었다. 화도 내가 중심일 때 낼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내가 중심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무언가가 나를 과잉반응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들을 미워할 수록 더욱 더 삐죽삐죽 날카로운 가시로 무럭무럭 자라났고 그 가시들은 바깥으로 향한 것 뿐만이 아니라 내 안으로도 뻗어나가 나는 갈수록 더 괴로워졌고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꼈다. 이런 양가감정으로 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 가시를 그 사람들에게 표현을 못하고 그저 내 속으로 누르다 인연이 끝이 났고, 그 가시는 문득문득 다시 고개를 빧빧히 들고 나를 찔렀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괴로움과 감정의 찌꺼기가 해소가 안 되었다는 걸 느꼈는데, 어느 순간 내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그냥 나는 그랬구나 나는 이렇구나 나는 이렇게 반응하는구나라고 담담히 받아들인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마음의 혼동이 사라지고 내 자신에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엔 그러한 내 자신조차 나였구나라고 인정하고 공감한 순간, 괴로움과 죄책감, 미움과 사랑의 감정 등의 양가감정을 떠나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향하던 가시는 없어지고 그로 인해 괴로움도 죄책감도 사라졌다.

그 뒤로는 그저 나를 돌아보고 담담히 나를 파악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순간에 어떤 감정을 갖는지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내 자신 사용설명서'라고나 할까.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내가 똑같이 반응하지 않고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감정적인 반응은 최대한 배제하고 이성적이고 싶다.

근데 제일 중요한 건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고,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도
내가 괴로움을 느끼는 인연이라면 잘라내는 게 제일 좋은 방식인 것 같다. 억지로 이어갈 필요는 없다.

#글쓰기#글쓰기그램#양가감정#인연정리#내자신사용설명서

'하루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챗GPT와 대화 2024.08.22 목  (0) 2024.08.22
나의 요즘 최대 관심사: 교육  (0) 2023.02.01
알라딘 중고서점 나들이  (0) 2022.05.30
꾸준함  (0) 2022.05.17
주니어 휠라 운동화 (feat.레고st)  (0) 2022.04.08